책장을 벗어나 역사를 말하는 XR 기술

역사의 의미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그 속에서 인류의 사회는 흥하기도, 망하기도 했다. 지난 시대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물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 당대의 시대상과 사건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의 영어 단어인 히스토리(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인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다’, ‘보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서정적 표현, 주관적 기술의 세 측면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Ted Carr)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역사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으며,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져 왔다.

하지만 역사에 대해 변치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 역사는 인간이 거쳐온 모습을 반영하기 때문에, 고고학과 사회학 등의 주변 학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상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므로, 역사도 달라질 것이다. 오늘은 역사를 설명하는 XR 콘텐츠와 미술관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시대의 끝에 남겨진 역사

인류가 걸어온 길에 남겨진 역사 자료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선사시대와 공룡들의 유물을 보며 그 생태를 관찰할 수도 있고, 파라오의 왕릉에 방문해 그 시대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재난을 상기하며, 우리는 반성할 수 있다.

홀드 더 월드 (Hold the World, 2018)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을 가상 공간에서 재현한 홀드 더 월드는 VR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이다. 각자의 집안에서 편안하게 자연사 박물관의 수집품을 경험할 수 있으며, 영국의 유명한 동물학자이자 BBC 다큐멘터리 해설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설명해주는 선사시대와 공룡들의 시대를 몰입감 있게 만날 수 있다.

인류의 출현 전 지구를 지배했던 생물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그래서 교육기관에서 이를 자주 활용하기도 하며, 교과서에 실린 그림보다 훨씬 흥미롭게 학습할 수 있다.

학교 수업에서 홀드 더 월드 박물관을 체험하는 모습

파라오의 왕릉 속으로 (Enter the Tomb: Virtual Reality Experience, 2019)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발달했으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최고(最古)의 문명 중 하나이다. 서기전 753년 ~ 서기 476년의 고대 로마 시절 로마인들에게도 피라미드는 이미 고대 문화 유적이었다. 그리고 그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건축물들도 현대인들에겐 고대 문화 유적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이집트의 역사가 얼마나 긴지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11월 2일부터 2020년 5월 3일까지 영국 런던의 사치 미술관(Saatchi Gallery)에서 투탕카멘: 황금 파라오의 보물 전시가 열렸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150개 이상의 진품 유물을 관람할 수 있으며, VR로 파라오의 무덤을 더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도 제공되었다.

체르노빌 VR 프로젝트 (Chernobyl VR Project, 2016),

20세기 중후반, 양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있었다. 전면적인 전쟁은 없었지만, 첩보전이나 군비경쟁, 대리전 등의 방법을 사용한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 시대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시대의 종언을 촉발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인데, 이것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이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를 설명하고,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인 체르노빌 VR 프로젝트는 체험하는 형식의 VR 콘텐츠로써 원자력 발전소 주변을 투어 형식으로 둘러볼 수 있게 제작되었다. 영상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사람들이 떠난 텅 빈 도시를 둘러볼 수 있으며, 사고가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주변도 가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아티팩트 코노빌 34 (ARTEFACT CHOrnobyl 34)

몇몇 예술가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비극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아티팩트 프로젝트 코노빌 34는 2020년 10월 26일부터 2021년 5월 5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전시되었으며, 미술과 결합한 XR 기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재(人災) 중 하나라는 중요한 진실에 주목했다.

전쟁의 역사

전쟁은 국가 또는 정치 집단 사이의 폭력이나 무력을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싸움이 벌어졌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전쟁 속의 인간은 가해자이기도 하며, 피해자이기도 한 비극의 반복이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과 관련된 XR 콘텐츠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쟁이 남긴 것 (War remains, 2020)

미국 캔자스 시티의 국립 제1차 대전 박물관에서 체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이다. 가장 치열한 전장 중 하나인 제1차 대전의 서부전선에서 참호전과 탱크의 출현을 직접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는 실제 크기로 제작된 전장의 무대와 VR 영상이 보여주는 처절한 전쟁의 기억들이다.

반란 1944 (Insurrection 1944, 2019)

1944년 8월의 파리를 체험할 수 있는 AR 콘텐츠이며, 파리 해방 박물관(Musée de la Libération de Paris)에서 경험할 수 있다. 홀로렌즈 헤드셋을 착용한 방문객은 기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저항군 본부를 방문하며 2차 대전 중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콘텐츠이다.

안네 프랑크의 집 VR (Anne Frank House VR, 2018)

전쟁은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진 안네 프랑크를 소재로 한 VR 콘텐츠인 안네 프랑크의 집 VR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콘텐츠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가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과 네 명의 다른 유대인들이 나치 박해로부터 숨어있던 비밀 별관의 방을 체험할 수 있다.

맺는말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그 속에 있는 모든 흥망성쇠를 포함한다. 하나의 거대한 실수가 또 하나의 거대한 재난을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를 거울삼아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인류는 또 다른 실수를 범할 것이다. 다만 그 실수에서 교훈을 배우고, 후세에 전하며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 교훈들을 전하는 한 축에 문화 콘텐츠가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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